현대 사회엔 몸에 대한 두 가지 극단적 오류가 있다. 하나는 영혼만 중요하게 여기는 태도다. 다른 하나는 영혼엔 관심이 없는 대신 몸을 우상화하는 것이다. 고린도 교인들이 즐겨 내세우던 슬로건은 ‘모든 것이 내게 가하다’이다. 이에 대한 바울의 첫 번째 반론은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다 유익한 것이 아니요”다. 그리스도인은 자유를 유익하게 써야 한다. 비록 내 권리라 해도 공동체에 유익하지 않으면 포기하는 게 바람직하다. 바울의 두 번째 반론은 “무엇에든지 얽매이지 아니하리라”(12절 하반절)이다. 바울은 방종이 아닌, 죄에 종노릇하지 않을 참된 자유를 가르친다. 또한 ‘몸’은 쾌락의 도구로 사용될 수 없다. “몸은 음란을 위하여 있지 않고 오직 주를 위하여 있으며 주는 몸을 위하여 계시느니라.” (13절 하반절). 우리 몸은 부활의 삶으로 지속될 몸이라 영원한 의미를 갖는다. 그래서 우리 몸은 하나님께 굉장히 중요하다. 누구나 유혹은 늘 가까이에 있으니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한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이다. 그래서 음행을 하나님의 시각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내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가지고 창녀의 지체를 만들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창녀와 합하는 자는 그와 한 몸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일렀으되 둘이 한 육체가 된다 하셨나니.”(15~16절). 성도의 몸은 그리스도와 연합된 그분의 지체다. 그 몸을 그리스도로부터 떼어내 부정한 것과 연합시킬 수는 없다. 합법적 성관계는 한 몸이 된 부부에게만 허용된다. 부부 관계를 넘어 자행되는 음행은, 불륜을 비롯해 모든 부도덕한 성적 행위라고 볼 수 있다.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 되며(17절), 성령은 우리 ‘몸’ 안에 거하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울은 “음행을 피하라”고 단호하게 명령한다. 누구나 유혹은 늘 가까이에 있으니 조심하고 또 조심하며, 모든 부도덕한 성관계로부터 도망쳐야 한다.
신약 시대 성도의 몸은 성령의 내주하심으로 거룩하게 구별된다. 우리가 음행을 철저히 피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곧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을 더럽히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바울은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19~20절)라고 강조한다. 더 이상 우리는 사탄과 죄의 노예가 아니다. 예수님의 생명이라는 엄청난 값을 치르고 새 주인이신 하나님을 섬기게 된 존재다. 음행은 이렇듯 존귀한 하나님의 소유인 몸을 도둑질해 죄의 도구로 쓰는 악한 행위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거하시므로 우리 몸은 더 이상 우리 것이 아니다.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20절 하반절)는 것이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올바른 몸 사용법이다.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방종이 아니다. 일상에서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방법의 핵심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다. 교회를 쓸고 닦는 헌신, 아픈 이를 돌보는 수고, 배우자와의 깊은 소통을 위해 식욕을 절제하는 일 등 이 모든 게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아름다운 영적 훈련이다. 우리 모두 몸의 참된 의미를 영혼 깊이 새기자. 첫째, 내 몸은 그리스도의 지체다. 둘째, 내 몸은 성령의 전이다. 셋째, 내 몸은 값으로 사신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다. 그리스도인의 몸 사용법을 올바르게 꼭 실천하자. 매일매일 모든 음행을 피하고, 숨을 쉬며 사는 동안 우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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