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에는 굉장히 극적인 사건이 나온다. 야곱과 하나님 사이에 씨름 경기가 벌어진다. 놀랍게도 예상과는 달리 씨름의 승자는 야곱이다. 에서의 처분에 운명이 걸린 인생 최대의 위기 앞에서, 야곱은 어떤 사람과 날이 새도록 씨름한다. 허벅지 관절이 어긋나는 고통 속에서도 그는 끝까지 상대를 붙들며 포기하지 않는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씨름의 과정과 그로 말미암아 야곱의 삶에 일어난 변화이다.
야곱과 어떤 사람 사이에 놀라운 대화가 시작된다. 숨 가쁜 대화가 세 차례나 진행된다. 첫째, 26절 하반절 말씀.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야곱은 절박하게 위기 탈출과 축복을 구한다. 둘째, 27-28절 말씀 “네 이름이 무엇이냐?”라는 질문에 그는 ‘속이는 자’라는 뜻의 부끄러운 이름 ‘야곱’을 정직하게 고백한다.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던 과거를 시인한 것이다. 이제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한 그에게, 하나님은 기꺼이 져주시며 ‘이스라엘’이라는 영광스러운 새 이름을 선사하신다. 28절 말씀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마지막으로 야곱이 상대의 이름을 묻자, 그는 대답 대신 야곱에게 축복을 내린다. 29절 말씀 “당신의 이름을 알려주소서.” “어찌하여 내 이름을 묻느냐 하고 거기서 야곱에게 축복한지라.” 비로소 씨름 상대가 하나님임을 깨달은 야곱은 그곳을 ‘브니엘’이라 부른다. 하나님과의 만남이 그를 새롭게 변화시킨 것이다. 오늘날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네 이름이 무엇이냐?’라고 물으시며 어떤 포장 없이 있는 모습 그대로 나아오길 원하신다. 사실 우리도 야곱처럼 변화되어야 할 사람들이다.
야곱을 변화시키신 하나님이 지금 나도 변화시키신다. 여기에 하나님의 위대하심이 있다. 세상이 두 손 두 발 다 든 죄인이라도 최고의 조각가이신 하나님의 손에 붙들리기만 하면 된다. 여기에 기독교의 역설도 있다. 세상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역설이다. 내 부끄러움과 연약함과 부족함이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를 맛보는 통로다.
바울의 고백과 같이(고후 12:9-10절) 주님의 은혜가 바울에게, 내게 충분하다. 주님의 능력은 약한 것 속에서 완전해지기 때문이다. 내가 약한 그때, 사실은 내가 오히려 강하다. 솔직히 우리는 모두 현대판 야곱이다. 문제가 없는 사람은 없다. 그렇다고 우리 중에 변화되지 못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 변화될 수 있다. 나를 완전히 변화시키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이다. 마지막으로 다 같이 외쳐보자 ‘야곱을 이스라엘 되게 하신 하나님, 저를 새 사람으로 변화시켜 하나님의 일꾼으로 멋지게 쓰임 받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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