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참 좋은 곳이다. 사실은 고향보다 더 뜻 깊은 곳이 있다. 오늘 내가 살아가는 이곳, 즉 삶의 터전이다. '지금 그리고 여기'(Now and here)이다. 이곳이 내게 가장 아름답고 의미 있는 장소다. 하나님이 현재 내 삶을 인도하시는 현장이기 때문이다. 바로 지금 이곳에서 내가 만나는 사람들이 있다. 하나님이 내게 붙여주셔서 만나는 사람들이다. 요나서 3장에서 하나님이 니느웨를 멸하시지 않는 걸 요나가 본다. 그러자 요나는 하나님께 벌컥 성을 낸다. 이런 요나에게 4절에서 하나님이 첫 번째 질문을 던지신다. “네가 성내는 것이 옳으냐?” 7절에선 하나님이 박넝쿨을 멸하시는 걸 요나가 본다. 이번에도 요나는 하나님께 또 성을 낸다. 이런 요나를 향해 9절에서 하나님이 두 번째 질문을 던지신다. “네가 이 박넝쿨로 말미암아 성내는 것이 어찌 옳으냐?”
요나와 하나님 사이엔 공통점이 하나 있다. 그것은 아끼는 마음이다. 요나가 아낀 것은 박넝쿨이며 하나님이 아끼신 것은 니느웨이다. 하나님은 한 영혼을 온 천하보다도 더 귀하게 여기신다. 하나님은 요나에게 자신의 마음을, 사랑을 이렇게 표현하신다.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11절 하반절). 하나님은 악인이라도 죽는 것을 전혀 기뻐하시지 않는다. 오히려 그가 회개해서 사는 걸 참으로 기뻐하신다(겔 33:11절).
아무리 큰 악인이라도 그의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나기를 바라신다. 진정으로 회개하기 원하신다. 과연 우리에게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 있는가? 잃어버린 영혼들을 아끼시는 마음 말이다. 잃어버린 영혼들을 향한 하나님의 간절한 소망은 오직 하나뿐이다. 그들을 다시 찾으시는 것이다. 이 일을 하나님이 기뻐하신다. 한 영혼엔 아주 독특하고 어마어마한 가치가 있다. 이 세상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가치다. 바로 영혼의 절대적 가치다. 영혼의 가치엔 아무런 차이가 없다. 그들은 모두 하나님께 아주 특별하고도 소중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왜 열심히 전도해야 할까? 잃어버린 영혼들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기 때문이다. 우리 교회가 오이코스 전도를 도입해 시행하는 중이다. 오이코스 전도의 본질은 '삶'이다. 첫째, 오이코스는 내 곁에 있다! 가까이 있는 사람을 먼저 소중히 여기자! 둘째, 오이코스는 내가 먼저 변화되는 것이다!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의 역할이 대단히 중요하다. '내가 믿은 예수님은 이런 분이야'를 삶으로 보여줘야 한다. 내가 경험한 예수님을 다른 사람들(나의 오이코스)에게 전하는 것이다. 말로 전하는 게 아니라 삶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셋째, 오이코스는 삶의 모든 부분을 보여준다! 이것은 진정성의 문제이다. 가식적이지 않은, 꾸미지 않은, 날것 그대로의 '진짜 내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오늘날은 말보다 행동이 중요한 시대다. '행동 전도, 섬김 전도'가 절실히 필요하다. 오이코스 전도는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주는 전략이다. 오늘 우리 각자에게 가장 절실히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다. 잃어버린 한 영혼, 오이코스를 향한 아버지의 사랑이다. 그 마음으로, 그 사랑으로 내가 오이코스 전도에 총력·집중하면 된다. 그러면 그 잃어버린 한 영혼, 오이코스가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될 것이다. 예수님의 사랑으로 행동 전도, 섬김 전도를 실천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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