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6장은 저 유명한 '이사야의 소명'을 다룬다. 이사야는 환상 가운데 하늘 보좌에 앉아 계신 여호와를 본다. 여호와께서 앉으신 '높이 들린 보좌'는 왕이신 여호와의 무한한 능력과 우주적 통치권과 흔들리지 않는 왕권을 상징한다. 3절에 따르면 스랍들에겐 찬양의 역할이 맡겨진다. 다음으로 5~7절에는 만왕의 왕 여호와 하나님이 갑작스럽게 출현하신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거룩'과 '영광'에 완전히 압도당한다. 자기가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크고 부정한 죄인인지 깨닫는다. 6절을 보면 스랍 중의 하나가 부젓가락으로 제단에서 핀 숯을 집어 가지고 온다. 그것을 이사야의 입술에 댄다. 이 의식을 통해 이사야 입술의 더러움이 제거된다.
하늘의 어전회의에서 결정된 사항이 있다. 하나님이 그 메신저를 찾으신다(8절). 이사야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한시도 지체하지 않는다. "그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그런데 여호와께서 이사야에게 맡기신 사명은 굉장히 충격적이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며 그들의 귀가 막히고 그들의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하건데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하시기로."(9~10절) 이 사명을 통해 여호와의 심판 결정과 이스라엘의 책임이 하나로 연결된다. 이런 완악함은 유다의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빚어진 결과이다. 이사야가 하나님께 한 가지 질문을 던진다. "내가 이르되 주여 어느 때까지니이까."(11절 상반절). 도대체 유다는 언제까지, 어느 정도로 깨어지고 부서져야 할까? 성읍들이 완전히 황폐해질 때까지이다.
"밤나무와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하시더라."(13절 하반절). 비록 멸망한 이스라엘이지만 거룩한 씨가 아직 남아 있다. 그 씨가 새로운 나라, 새 역사를 시작할 것이다. 예언자 이사야가 받은 사명의 길을 생각해 보면, 결코 즐겁거나 행복한 길이 아니다. 패역하고 완악한 백성에게 심판과 형벌의 메시지를 전해야만 하는 길이다. 그러나 사역의 주인은 자기가 아니라 하나님이다. 하나님이 가라 하시는 바로 그곳으로 가야한다. 감사하게도 주님이 사랑하는 이사야를 홀로 내버려두지 않으신다. 그 사명의 길에 그와 함께하신다.
오늘 하나님이 우리를 교회의 일꾼으로 부르신다. 왜 하나님이 하필 나 같은 죄인을 사랑하셔서 사용하시려는 걸까? 이것은 하나님의 무조건적 은혜, 무한한 은혜다. 나와 같은 죄인을 깨끗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값없이 풍성한 은혜다. 그러므로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라고 반응해야 한다. 하나님이 맡겨주신 사명에 충성스럽게 '올인'하면 된다. 하나님이 내게 요구하시는 건 충성이다. 사명엔 눈물과 고통이 따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내 사명의 주인은 주님이시다. 주님이 내가 남몰래 흘린 아픈 눈물을 다 보신다. 나는 절대로 혼자가 아니다. 나 같은 죄인을 교회의 일꾼으로 부르신 하나님께 감사하자. 은혜로 주신 사명을 끝까지 충성스럽게 감당하자. 그럴 때 하나님이 큰 영광 받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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