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지구촌이 초비상이다. 생존의 위기 앞에 선 인류의 모습이다. 자기는 끄떡없다고, 안전하다고 누가 자신할 수 있을까? 여기서 떠오르는 묵직한 질문이 하나 있다. ‘이토록 위험한 세상에서 나는 무엇을 소망하며 살고 있는가?’ 이사야는 여호와의 구원을 이미 성취된 사건으로 본다. 1절을 보면 짙은 어둠 속에서 고통당하던 자들이 있다. 그들에게 깜짝 놀랄 만한 기쁜 소식이 전해진다. 흑암이 사라지고 구원의 빛이 동터온다. 2절을 보면 어둠 속을 걷던 백성이 아닌가? 놀랍게도 환난과 고난에 처한 자들이 생명의 빛을 본다. 이 큰 빛은 참담한 암흑의 운명을 끝낼 것이다.
3절에서 이사야는 그들의 기쁨을 극적으로 묘사한다. 첫째, 수확의 기쁨이다. 둘째, 전리품을 나누는 기쁨이다. 그러면 기쁨과 감사의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는, 이방 민족의 압제로부터의 해방 때문이다. 둘째, 전쟁의 승리 혹은 폐지 때문이다. 셋째, 한 왕적 인물의 출생 때문이다.
그 왕은 통치권이 그의 어깨에 있는 한 아기다. 6절 말씀이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신비하게도 한 아기, 한 아들에게 네 개의 엄청난 이름이 주어진다. ‘기묘하신 모사’,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 ‘평강의 왕’이다. 과연 이 아이는 누구일까? 다들 짐작하는 대로 메시아 예수다. 이 아이 메시아 예수가 통치하는 나라는 어떤 나라일까? 영원한 메시아 왕국, 하나님 나라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메시아 예수를 통해 이 땅에 임한 나라다. 그러므로 내가 매일매일 메시아 예수의 통치를 받으며 사는 것이다. 이 통치가 내 삶에 주는 유익이 얼마나 큰가? 먼저 죄와 사망 권세로부터의 해방이다. 다음은 생명과 평안과 기쁨과 행복이다. 과연 누가 메시아 왕국의 시민이, 천국 시민이 될 수 있을까? 천국의 왕이신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사람이다.
결국 예수 영접의 핵심은 두 가지다. 첫째로, 예수님은 내 구주, 내 구세주이시다. 둘째로, 예수님은 내 주님이시다. 그러므로 내 구주와 주님이신 메시아 예수가 참 소망이다. 아직도 이 진리를 모르는 오이코스가 우리 주변에 많다. ‘오이코스’는 헬라어로 ‘집’이다. 그 뜻은 ‘친구’와 ‘가족’과 ‘이웃’이다. 이제 우리의 과제는 ‘오이코스 전도’를 정착시키는 것이다. 행 16:31절은 이렇게 선포한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오늘 우리가 행 16:31절의 약속을 믿고 순종하면 된다. 그러면 주께서 내 오이코스가 예수 믿고 구원받게 하실 것이다. 이제는 우리가 적극 행동에 나서야 할 때이다. 크게 두 가지 차원의 전략이 필요하다. 첫째로, 리더십들의 비전 공유다. 둘째로, 성도 개인별 실천이다. 메시아 예수, 우리의 참 소망이다. 오이코스의 손을 붙잡고 그 최고의 나라 천국에 같이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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