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대화는 입이 아니라 마음에서 시작된다. 진정한 소통의 비결은 세 가지이다.
첫째, 상대방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둘째, 그의 감정과 생각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셋째, 그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것이다.
오늘 우리는 본문에서 ‘소통의 달인’, '소통의 왕'이신 예수님을 만난다. 예수님은 유대를 떠나셔서 수가란 동네에 도착하신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정오에 물을 길러 온 사마리아 여인을 의도적으로 만나셨다. 고압적인 자세가 아닌, "물을 좀 달라"는 겸손한 요청으로 파격적인 대화를 시작하셨다. 원래 유대인은 사마리아인과 상종하지 않는다. 그런데 왜 유대인인 예수님이 자기에게 물을 달라고 할까? 예수님을 향한 여자의 의문이다. 예수님은 그녀의 두 가지 무지를 지적하신다. 첫째, 하나님의 선물에 대한 무지: 하나님의 선물은 생수, 즉 살아있는 물이다. 여자가 평소에 우물에서 길어 먹는 물과는 차원이 다르다. 영원히 목마르지 않게 하는 신비한 물이다. 둘째, 예수님에 대한 무지: 예수님은 평범한 유대인 남성이 아니다. 영원히 목마르지 않도록 생수를 주시는 분이다. 이스라엘이 오랫동안 기다려온 메시아 곧 그리스도이다.
여자는 "이 깊은 우물에서 어떻게 물을 얻겠느냐,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크냐"며 의심 섞인 질문을 던진다. 예수님은 야곱의 우물이 가진 한계를 명확히 짚어주신다. 이 우물의 근본적 한계는 ‘다시 목마를 것’ 이라는데 있다. 세상의 물은 마실 때만 잠시 해갈될 뿐, 다시 목마름이 반복되는 불완전한 물이다. 하지만 예수님이 주시는 물은 다르다.
첫째, 이 물이야 말로 목마름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한다. 그것도 지속적으로 해준다.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둘째, 야곱의 물처럼 단순히 흡수되고 마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솟아나는 샘물'이 된다. 이는 콸콸 솟구치는 강력한 물이다. 예수님이 주시는 물은 역동적인 물인 것이다.
우리 인간에게는 육신의 목마름보다 무거운 '영혼의 목마름'이 있다. 사람들은 성공과 출세라는 이름의 사닥다리를 오르며 행복을 찾지만, 그것은 사막의 신기루일 뿐이다. 인류의 첫 조상인 아담과 하와가 타락한 이후, 하나님 앞에서 쫓겨난 모든 인간은 그 무엇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영혼의 갈증을 안고 살아간다. 이 갈증을 해소하는 길은 오직 하나, 예수님께로 나아가 그분이 주시는 생수를 마시는 것뿐이다. 영혼의 목마름이란 근본적인 문제가 완전히 깨끗이 해결된다. 결국에는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된다. 생수를 마셨음에도 삶에 기쁨이나 만족이나 행복이 없다면, 그것은 주님과의 '인격적 관계'를 점검해봐야 한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처럼, 서로 자주 만나고 대화하는 소통이 있어야 관계가 건강해진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도 마찬가지다. 시편 기자의 고백처럼 하나님께 가까이함이 내게 복이다. 그냥 교회만 다니는 것이 아니라, 말씀과 기도라는 은혜의 방편을 통해 주님과 친밀하게 교제하며 친밀하게 지내야 한다. 그럴 때 하나님과 사랑의 친밀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이때 비로소 '살맛나는' 신앙생활, 즉 성령 충만한 삶을 누릴 수 있다. 이 시간 내 영혼을 향한 묵직한 세 가지 질문이 있다. 영혼의 목마름과 행복과 영원한 생명에 관한 질문이다.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다. 반드시 내 입으로 직접 대답해야 한다.
첫째, 나는 예수님께 나아가 그분의 생수를 마셨는가?
(예수님을 믿어 하나님과 인격적 관계를 맺었는가?)
둘째, 나는 영혼의 목마름이 해소되었는가?(오늘 참된 기쁨과 만족을 누리며 살고 있는가?)
셋째, 나는 영원한 생명의 소유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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