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우리는 공동체의 외적인 환경이나 능력에 관심이 많다. 환경이 좋고 능력이 탁월하면 아무 문제가 없다고 말한다. 얼마든지 주님이 기뻐하시는 큰일을 많이 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환경이나 능력만 잘 갖추면 얼마든지 예수님께 칭찬받을 거라 생각한다. 불편한 진실이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교회의 겉모습이 아름다운 행위를 보장하지는 못한다. 아름다운 행위는 외형적인 것들에 달려 있지 않다. 공동체의 상황이 어렵다고 예수님의 말씀을 지킬 수 없는 건 아니다. 공동체의 겉모습이 초라하다고 예수님의 이름을 부인할 수밖에 없는 것도 아니다. 공동체를 향한 예수님의 사랑만 확실히 붙들고 있으면 된다. 예수님의 사랑은 그분의 말씀을 굳게 지키도록 이끄는 강력한 원동력이다. 예수님의 이름을 부인하지 않도록 만드는 놀라운 비결이다. 빌라델비아 교회 성도들을 향한 예수님의 사랑을 생각해보라.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떠올리게 한다. 오늘 우리는 환경의 어려움 앞에서 주저앉고 싶을 때가 많다. ‘내 환경이 이렇게 나쁘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가 힘들다. 내게 능력이 정말 부족하다. 그래서 믿음을 지키기가 어렵다.’
하지만 빌라델비아 교회 성도들을 보면 이런 말이 통하지 않는다. 문제는 환경의 어려움이나 능력의 부족이 아니라 예수님을 향한 사랑이다. 예수님만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그 어떤 것도 문제가 아니다. 어떤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있다. 아무리 능력이 보잘것없어도 믿음을 지킬 수 있다. 예수님께 칭찬받을 만한 아름다운 행위를 나타내 보일 수 있다. 예수님은 빌라델비아 교회의 아름다운 행위를 칭찬하신다.
모든 시대의 모든 교회를 향한 예수님의 관심이 눈에 띈다. 이 관심은 어떤 상황이나 환경 속에서도 변함이 없다. 예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다. 게다가 이 예수님의 관심은 지상 명령 속에 분명히 표현되었다. 그분의 지상 명령은 모든 민족을 제자로 만드는 것이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모르는 자들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가야 한다. 그들에게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어야 한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분부하신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해야 한다. 우리는 모두 각자 인생의 무대 위에 서 있는 존재들이다. 그러나 그 무대는 영원하지 않다. 언젠가는 반드시 끝나고야 마는 한정된 무대이다. 관객이 다 떠난 후 화려한 조명은 꺼지고 막은 내려진다. 그때 허탈감에 치를 떨며 무대를 내려와야 할까? 아니면 자신의 역할을 잘 마치고 감사하며 내려와야 할까? 엉뚱한 것을 잡으려고 몸부림치지 말자. 자칫하다간 소중한 인생을 낭비할 위험이 있다. 사실 낭비해도 좋을 만큼 가벼운 인생이란 없다. 어떤 경우에라도 열악한 환경 앞에서 주저앉지 말자. 능력의 부족을 탓하지도 말자. 예수님을 향한 사랑만 있으면 된다. 그 사랑이 우리의 진정한 능력이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승리자로 서면 좋겠다. 우리에게 믿음의 인내가 필요하다. 오로지 예수님의 말씀에만 집중하자. 예수님의 말씀만 붙들자.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신실한 순종으로 나아가자. 우리 모두 빌라델비아 교회 성도들처럼 예수님께 칭찬받는 아름다운 인생이 되자.
댓글